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 로셸 (문단 편집) === [[백년전쟁]] === 1360년의 브레티니 조약으로 잉글랜드는 아키텐을 회복하였고 따라서 라 로셸도 136년만에 플랜태저넷 가문령이 되었다. 그리고 1372년, 프랑스의 동맹인 [[카스티야 왕국]]은 함대를 파견하여 아키텐 해안을 공략했는데, [[라 로셸 해전|라 로셸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]][* Battle of La Rochelle. 6/22-23]에서 펨브룩 백작이 이끈 잉글랜드 해군이 대패했다. 이 전투는 개인 화기가 쓰인 첫 해전이자 프랑스의 반격의 상징이었다. 이후 프랑스는 카스티야의 도움으로 1340년의 [[슬로이스 해전]] 이후로 빼앗겼던 채널 ([[도버 해협]])의 제해권을 회복하였다.[* 라 로셸을 잃은 잉글랜드는 보르도와 그 남쪽의 [[가스코뉴]]를 영유하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.] 그리고 라 로셸은 그해 9월 7일에 자유를 얻었는데, 프랑스 사령관 [[베르트랑 뒤 게클랭]]의 입성을 거절하였다. 도시는 국왕 [[샤를 5세]]가 상업 특권을 인정해 준 1372년 11월에야 프랑스 영토로 복귀하였다. 1402년에는 [[포르투갈]]의 항해 열풍에 탑승한 프랑스의 탐험가 장 드 배렝쿠르가 라 로셸에서 출항하여 [[카나리아 제도]]로 향해 항해하기도 했다. 그리고 1419년 12월 30일에 잉글랜드는 한자 동맹의 전함까지 빌려 카스티야 함대와 다시 라 로셸에서 격돌했는데, 이번에도 카스티야 왕국의 승리였다. 카스티야 측은 화약 무기를 사용하여 승기를 잡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